[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할매 소원

2018-10-25     경남일보

할매소원

어디 눈으로 보이는
보따리만 보따리이던가
마음에 박힌 보따리
내려놓지 못하는 어린 보따리끈
붙일 때까지만 살게 해주소

-박해경



마음의 짐이란 말인가. 떠날 날이 가깝다는 생각에 그럴 수도 있겠다. 붙일 때 하나 없는 어린 핏줄을 보면 억장이 무너져도 여러 번, 어디 편한 잠이나 오겠는가. 정류장인 듯,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주위를 뱅뱅 도는 피붙이를 데리고 어딜 가시려는지. 저 보따리 속이 궁금해진다. 설마…. 그래, 텃밭에서 키운 푸성귀 내다 팔러 가는 중이겠지? 괜한 상상은 말자.

걱정되어 맘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할매의 한숨 속에 섞인 말은, 힘들어도 내 핏줄이니 견딜 만하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같이 가정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끈 붙일 때까지, 그러니까 장성하여 반려자를 만날 때까지 견뎌 주시기를. 그리고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