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사랑은 행동과 눈길로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2018-09-30     경남일보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해서 사랑의 고백을 반드시 말로써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말재주가 아무리 좋더라도 아무데서나 남용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는 감정의 물결이 별빛처럼 반짝이고 생명의 약동이 숨김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말로서 고백하는 것 보다는 눈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고백할 때 말보다는 더 많은 진실성을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의 맑은 눈동자를 가리켜서 마음의 호수라고도 부른다. 검은 눈동자에는 여러 가지 정감이 흐르고 안식처가 되어 있는 듯 잔잔한 호수처럼 빛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눈동자를 대했을 때 그 눈동자를 읽을 수 있는 밝은 지혜를 가졌다면 딴 설명이 어찌 필요하랴. 때로는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읽어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써 사랑하는 이의 빛나는 눈동자에는 더 많은 것을 고백하고 더 많은 진실을 상대에게 숨김없이 바칠 수밖에 없다.

진실한 사랑일수록 아름답고 순수하기 때문에 수줍음을 나타낼 수도 있어, 사랑을 말보다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상대의 단점보다 장점이 먼저 보이기 때문에 사랑을 고백할 땐 육체적인 접근 보다는 생활을 통한 아름다운 행동들이 먼저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창조적인 노력의 기쁨을 맛보고 서로 도와주고 장래를 약속해 나가자는 구체적인 증거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그 이상 진실한 사랑의 표현 방법은 없다.

첫 사랑은 사랑 중에서도 때 묻지 않고 풋풋하며 계산적일 수 없는, 오직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극적이기도 하다. 또한 순수하면서도 순종적이며 두근거리는 가슴에 흥분하고 설레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청아한 눈에서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말보다는 먼저 행동으로서의 언어, 더 진실한 눈으로서의 사랑의 언어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말로써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사랑의 고백은 반드시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눈으로 하고 행동으로 할 때 더욱 빛나는 것이지 수작(酬酌)으로 지껄여 보자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눈동자가 사랑을 고백할 때 그 눈동자의 언어는 곧 사랑의 시가 될 것이며, 또 행동으로 표현할 때 그 언어는 사랑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