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명 조식선생의 사상세계

강정기(통계청 진주사무소 조사행정팀장)

2018-10-21     경남일보

몇 년 전 출장차 산청군을 지나다가 우연히 남명 조식선생을 만났다. 바로 시천면에 소재한 남명기념관에서였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과 더불어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세계적인 철학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학생시절 역사시간에 잠깐 이름만 들었던 것 외에는 선생의 사상세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터라, 놀라움은 더 컸다.

그동안 남명선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왜 묻혀 있었는지는 선조 임금대의 정치적인 사건들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 정치적인 사건들은 뒤로 두고, 남명선생의 철학(哲學)과 사상(思想)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시사점들을 주고 있는지 논해 보고자 한다.

남명선생은 깨달음을 얻은 후 불교(佛敎)와 도교(道敎)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했다.

원천부(原泉賦)라는 글을 보면 ‘萬理具於性本, 混潑潑而活活’(온갖 이치가 다 본성에 갖춰있어, 운용에 따라 모두가 활발해 지도다)이라는 말이 나온다. 선생의 정체를 드러내는 중요한 한 대목이자 오도송(悟道頌)이라 불러도 좋을 글귀이다. 인간의 본성에 인의예지가 다 갖추어져 있어 상황에 따라 어긋남이 없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표현한다. 근본바탕은 진공의 모양이나, 그 체용은 어긋남이 없이 묘하다는 것이다.

남명선생은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로서 그 깨달은 바의 실천을 중시하여 평생을 경(敬)과 의(義)로써 자신을 경책, 근신하였으며, 가난하고 도탄에 빠진 이웃을 구하고자 자기 목숨마저 내어놓고 직언의 상소를 올리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던 사랑의 실천자이기도 하였다.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셨던 선생의 가르침대로 제자들은 모두 목숨을 내어놓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서 왜적들을 쓸어버렸다. 오늘 인륜이 땅에 떨어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예의범절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이 모두가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물질만능의 쾌락주의에 빠진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진정 이 시대가 필요로 한 것이 남명선생의 ‘사랑의 실천’정신이 아닌가! 입으로만 사랑을 부르짖기는 쉽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 손해를 감수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선시대 정치적인 이유로 위축되어 사장될 뻔한 남명선생의 실천적 사상이 오늘 산청군과 뜻있는 유림의 활발한 활동으로 우리들 앞에 다시 부활했다. 우리 모두 인생을 마감하는 그 날 까지 남명학과 함께 인격도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정기(통계청 진주사무소 조사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