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상처(강영식)

2018-12-17     경남일보
 


山 입장에서는
굴파리 유충들 기어 다니는,
뜯어내고 싶은
상춧잎.

-강영식



목적지를 향해 회오리치듯 한 능선이 포착된다. 이 때 시인은 자아의 시선에 응고된 존재의 무늬를 내밀하게 응시한다. 케이블카가 연방 움직이고 있으니 이는 필시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겨난 이미지다.

하지만 산의 입장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면, 마치 굴파리 유충이 기어 다닌 상춧잎을 닮았다. 굴파리는 파리목 굴파리과 해충으로 기주식물의 잎에 구멍을 내어 산란한다. 부화한 유충이 뱀처럼 갱도를 뚫고 다니며 섭식하는 것이다. 잎에 피해를 주는 굴파리를 잎의 광부라고 부른다면 휘적휘적 저 자동차들은 산의 광부가 아닐까. 정말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 뜯어내고 싶다는 마음이다. 회복 할 수 없을 것 같은 저 상처 앞에서 오늘, 부끄러움을 배운다./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