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의 가르침

김상진(전 언론인, 진주기억학교 센터장)

2018-12-20     경남일보
해방 무렵 내 아버지는 북한 평양철도공작창(현 평양차량수리공장)정비기술자였다. 충남 천안 출신인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에서 기계관련 공부를 한 뒤 취업을 위해 평양으로 갔었다. 당시 남한은 농업위주였지만 북한에서는 공업이 발달해 일자리가 많았다고 한다.

해방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남한출신이라는 신분에 불안감을 느끼고 1·4후퇴 때 피난행렬에 합세했었다. 부산으로 피난 온 아버지는 부산철도공작창(현 부산철도차량정비단)에서 잠깐 일했었다. 자연스레 당시 남북의 철도기술을 비교할 수 있었던 아버지는 “남한의 철도시설과 장비, 정비기술이 북한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고 이야기 하셨던 기억이 난다. 북한의 모든 것이 남한보다 낙후됐다고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아버지의 그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첨단기술이었던 기차를 다루는 엔지니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남북철도 연결식이 26일 열린다는 소식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자료를 찾아보니 사실이었다.

일제는 지하자원이 많은 북한에서 전쟁 물자를 빼내기 위해 많은 노선의 철도를 건설했었다. 북한 산악지대에 도로를 내기가 어려웠던 현실도 일제가 북한 철도 길이를 늘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 영향으로 북한공산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북한의 철도시설은 한동안 남한보다 앞섰다.

지금 북한 철도 총연장은 5300㎞로 남한의 1/2밖에 되지 않는데다 현대화를 하지 않아 98%가 단선(單線)이다. 평양∼신의주나 동해선 일부를 제외하면 녹슨 고물로 방치돼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김씨 3대가 독재로 다스려 온 북한의 당연한 현실이다.

남북철도 연결식을 놓고 말이 많다. 낭만파는 몇 년 안에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열차를 타고 갈 수 있고, 부산에서 유럽까지 화물을 보낼 수 있다고 들떠있다. 반대쪽은 38조원으로 추정되는 북한철도 현대화 사업비 조달이 문제인데다 개통된 다해도 이용하는 여객과 화물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의문을 던진다.그래 철길을 놓고 다투지 말자. 철길이 두 갈래인 것은 험한 길일수록 둘이서 함께 가라는 뜻이다. 보여 주기위한 행사 하지 말고 쓸데없는 트집 잡지 말라고 가르친다. 철길은 급하게 방향을 꺾지 않는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 본 뒤에 천천히, 그리고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커브를 돈다.

나는 끝없이 뻗은 레일을 바라보면 설렌다. 기차를 타고 그 철길 끝까지 달려가면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김상진(전 언론인, 진주기억학교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