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공원석(전 합천중학교장)

2019-01-10     경남일보


나는 태어난 지 채 백일도 못 돼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시던 어머니셨지만 “사람은 어떤 경우이든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서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습니다.

초등학교시절엔 도시락을 준비할 형편이 못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가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입학금인 쌀 너 말 값을 빌릴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남의 집에 꼴머슴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엔 공납금을 제 때 납부하지 못해 시험 도중에 쫓겨나는 서러움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엔 학교에서 예기치 못한 강한 체벌을 받았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나는 “퇴학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사용 교장선생님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난 후 자퇴를 말렸고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당시 교장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내 학업은 거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말엔 가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형님께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대학진학을 꿈꾸던 내 실낱같은 희망도 꺼져버렸습니다. 친구들이 대학진학에 집중할 때,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찬규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어 입학원서 한 장을 내미시면서 “대학교시험 한 번 응시해봐라. 가정형편에 4년제 대학은 부담이 크니 2년제 초급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합격한다면 도와 줄 분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 반에서 그 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있으니 그와 함께 가도록 주선해 주마”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의 안내와 보살핌으로 부산사범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중학교강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해 합천군 내에서만 근무했습니다. 교감승진후보자 선정이 시험제도로 바뀌어 교감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교장승진은 험하고도 멀어서 교감근무 13년 6개월 만에 정년 4년을 남겨놓고 어렵사리 승진했습니다. 교장임기 4년을 마치고 정년퇴임한지가 벌써 19년이 지나갑니다.

팔순을 넘기고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어떤 경우든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서 참고 견디어라”하신 어머니 말씀이 가슴깊이 다가옵니다.

내 인생의 명언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됩니다. 머지않아 얼굴모습조차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길러주신 어머니를 천국에서 꼭 뵈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고 보람 있게 살아갑니다.

공원석(전 합천중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