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

김태은(약사)

2019-02-13     경남일보
김태은

“바쁘다 바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명절에 부모님도 잘 찾아뵙지 못하던 한 선배가 어쩐 일인지 이번 설에는 고향을 찾아 왔다.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이번에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할머니와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도 자신이 찾아오니 말씀은 따로 안하지만 기뻐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더라며, 할머니와 함께 해서 행복 했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몇 가지 들려주었다.

예전 텔레비전에 나오던 것처럼 철없던 어린 시절 넉넉지 않은 형편에 도시락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도시락을 일부러 집에 두고 나왔는데 학교까지 애써 찾아 오셔서 도시락을 가져다주신 일이며 “그걸 또 왜 그러냐”는 어머니에게 “그러면 우리 귀한 아이가 배가 굶으면 좋겠냐”고 추궁 하셨다는 일이라든지, 자기가 얼토 당토 않은 말을 해도 “그래 그래” 하며 무조건 믿어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선배는 “어린 시절 부터 할머니는 자기에게는 온전한 사랑 그 자체였다”고 했다. 어머니의 엄격함 속에서 자신을 한 없이 포근하게 해 주는 안식처면서, 작은 우주였고, 인격을 형성하게 해 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오래 전 영화 ‘집으로’가 생각이 났다. 철 없고 버릇 없는 손자가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놀리고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무조건 적이다. 그리고 손자도 이를 깨닫고 할머니와의 이별을 슬퍼한다.

모두들 옛날 할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고, 할머니와의 추억 한 토막 쯤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신이 모든 사람들 돌보지 못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 위에 또 하나의 어머니, 할머니들 또한 신의 보살핌으로 무조건 적인 사랑을 베푸신다.

부모도 모두 아이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고 싶다. 그러나 그 상황이 힘들어서, 아니면 그 순간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혼내거나 화를 낸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은 조금 더 여유가 있다.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인 것 같다.

오늘은 긴긴 겨울 밤 곶감을 하나씩 내어 주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내 아이들의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챙겨 주신 곶감을 탐내어 본다.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 더 건강하시면 좋겠다. 그 사랑 오래 오래 전해 주실 수 있도록.

 
김태은(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