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가이드라인, 외모지상주의에 금을 긋다

이희성(대학생·경상대학교)

2019-02-21     경남일보

경남일보에 여성칼럼을 기고하게 되었다는 말을 전했을 때 ‘왜 여성칼럼은 있는데 남성칼럼은 없냐’는 말을 했던 지인이 생각난다. 그 말이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거기에 대한 나의 답은 ‘왜 남성칼럼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라’였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입지가 동등해진다면 ‘여성’을 위한 자리 또한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필자가 중학생이던 당시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부는 있는데 왜 남성부는 없냐는 질문 말이다, 그 질문과 더불어 ‘여성부는 쓸데없는 일이나 하는 곳이다’는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어떤 과자의 모양이 생식기와 닮아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여성부가 판매 금지시키려고 했다는 것부터, 비슷한 맥락으로 자동차, 테트리스 게임 등을 금지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다. 악의적인 소문은 공공연하게 퍼졌고 ‘여성부 때문에’라는 말은 일종의 유행어처럼 소비되었다. 이제 와서 곱씹으면 신빙성 없는 여성부 괴담을 놀랍게도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철썩 같이 믿었었다. 당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괴담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누군지는 몰라도 처음으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사람의 목적은 얼추 이루어지지 않았나싶다. 심지어는 최근까지 그 괴담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여가부의 존폐부터 정책에 대한 찬반논의는 중앙행정기관 중 단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가부가 얼마 전 발표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대한 반응은 실로 처참하다. 제작안내서는 지난 17년도에 방송사와 제작진이 실제 방송제작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을 5개 영역으로 나눠, 영역별로 점검 사항과 구체적인 좋은 방송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제작·배포했던 안내서를 보완한 것이다. 개정판에는 ‘방송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추가되었는데, 이를 보고 ‘정부가 음악방송 출연자 외모까지 간섭한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가부 의원들의 외모가 더 획일적이다’라는 의견까지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다. 독재 정권 시절, 언론 검열을 운운하며 현 사태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이돌 외모 검열로부터 정부가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 여가부는 ‘제안을 검열, 단속, 규제로 해석하는 것은 안내서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방송 제작을 규제할 의도가 없다는 뜻을 전하기도 하였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면 누가 누군지 헷갈릴 만큼 비슷한 외모의 아이돌이 많다. 단순히 얼굴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청순컨셉, 섹시컨셉 등 무대의상, 헤어스타일, 심지어는 화장법까지 다 비슷한 스타일링을 한 아이돌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모의 획일성은 외모지상주의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을 더 견고히 하는데 일조한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끊임없이 송출하는 것은 성인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른 외모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것이 여가부 가이드라인의 핵심 내용이다. 이 취지를 왜곡하여 ‘쓸데없는 일만 하는 여가부를 폐지해야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10여 년 전쯤 여성부 괴담에 일조하지 않으셨냐고 말이다.

아무리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하라고 말하면 뭐하나. 당장 TV만 틀어도 비슷한 외모의 연예인들이 모두 ‘우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무대에 올라와 있다. 그것을 보고 자신과 비교하며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낮은 자존감 문제가 아니다. 정말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것은 여가부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획일화된 미의 기준과 외모지상주의다.

 

이희성(대학생·경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