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

2019-03-12     경남일보

봄볕은 한결 따사롭고 나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시절을 맞추어 꽃피고 잎을 드리우는 자연 섭리가 참으로 신비스럽다. 삼라만상 자연에 감사할 뿐이다. 이처럼 지금 그 자리에서 여여하게 자리하고 있는 뭇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언제 저 나무처럼 부동심으로 이웃에 바람 없이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몽매한 우리 인간은 한 평생 동안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며 슬퍼하고, 현재에 방황하며, 미래를 불안해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석가는 중생의 이러한 고통에 대해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하라’고 했다. 과거 마음도, 현재 마음도, 미래 마음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라는 생각, 현재라는 생각, 미래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집착하지 마라, 방하착(放下著)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자식에게, 부부간에게 그 누구에게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살아보니 될 것은 되고 안 될 것은 안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십 년 후에 집착하면서 오늘을 괴로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은 우리 인간이다. 어제까지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이승을 떠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부쩍 ‘지금 여기’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있는 듯하다.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을 붙잡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세 가지 질문’에서 왕이 그토록 알고자 했던 세 가지 의문을 산속 거북이 레오를 통해 알게 된 것도 바로 ‘지금 여기’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는 것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임제 선사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이 있다. 자기가 어디에 있든 자신이 주인으로 살아야 하고, 자기가 어디에 있든 자기가 있는 그 곳만이 참 진리라는 말이다. 또 중국 고사의 ‘기우’라는 말도 있는 걸 보면 닥치지도 않은 미래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나간 어제의 일들을 불어내어 후회하고 슬퍼하지 말고, 오지 않은 내일에 두려워하고 괴로워하지 말자.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고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자리 이외는 모두 허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인가. 어렵고도 어렵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하고 오늘은 오늘만 생각하자. 햇살이 따뜻해지고 꽃피는 봄이 오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모든 것 내려놓고 바닷가 찻집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이나 했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만 생각하자.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