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야, 받아줄래?

이신남(시인·논술강사)

2019-03-13     경남일보
이신남

‘밤이 길어도 우찌 그리 긴지 날이면 날마다 빌고 또 빌고 할 수 있는 게 성주님께 빌고 울 엄매한테 빌고 저 세상 가고 없는 너거 아부지한테 빌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 손바닥이 닳도록 비는 기 전부 아이가’ 자식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부모한테 자식은 칠십을 넘고 팔십을 넘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금방 보고도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내 새끼’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오지마을에 사시는 팔순의 할머니 인터뷰 내용,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상 어느 부모든 자식을 향한 기도는 수명장수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오직 한 마음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청천벽력 같은 날이 올 때가 있다. 할 수 있는 것 다하며 최선을 다해도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을 때 우리는 신을 찾는다.

간절하고 절실함으로 부처님과 하느님도 불러보고 때로는 위안으로 바다를 찾기도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할 때 그저 바라만 보아도 푸른 물을 다 들여 마신 것처럼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바다, 흐느끼며 수척해진 어깨의 떨림과 그 울음을 감추지 않아도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소리를 숨겨주고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서 바람으로 눈물을 말려주니 어찌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지난 시간의 그리움으로도 무작정 달려가고 싶은 곳이 바다다.

아주 가끔은 맹수의 포효처럼 산더미 같은 해일로 다가와 한순간 모든 것을 삼켜버리지만 그것은 악의가 아니라 자연의 힘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우리는 안다.

흔들리는 물결위에서 슬픔을 한숨으로 기쁨을 웃음으로 토해내도 물들지 않는 바다, 찬란한 빛의 일출과 황홀함으로 물든 일몰의 빛은 관능적인 풍경으로 우리들 내면의 슬픔을, 그 안의 기도를 다 받아주는 넉넉한 품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인간이기에 겪어야할 많은 일들을 수없이 아파하며 힘겹게 이겨나가고 있다. 그 아픔을 견뎌내기까지 많은 이들이 무수히 바다를 찾았을 것이고 종교의 한 부분에서 신을 찾았을 것이다. 모든 일들이 일취월장으로 술술 풀리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정신이든 육체든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알아가는 것은 시간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최악의 고통이고 슬픔일지라도.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치료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시간은 신의 다른 이름’이라는 고(故)박완서 작가님의 글귀가 떠오르는 이 순간이다.

 
이신남(시인·논술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