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음주(不飮酒)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2019-03-26     경남일보
임규홍

술에 대해 누가 감히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술은 음악과 춤과 함께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인들이 그토록 술을 노래하고 예찬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으로 술 취함을 경계한 가르침도 그만큼 많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풀린 눈동자와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엘리베이터 거울로 본 적이 있는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횡설수설한 지난밤 언행들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대부분 종교에는 이러한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술 마심을 경계하거나 금하기도 한다.

주자(朱子)의 십회(十悔)에 ‘술 취해서 한 망언은 술을 깨서 후회한다(醉中妄言醒後悔)’고 하였고, 공자는 ‘술을 마시되 어지러움이 없도록 하라(唯酒無量, 不及亂)’고 하였다. 기독교의 성경에도 술 취하지 마라거나 술 취한 사람 중에 있지 말라고 한 내용은 여러 곳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 이상은 알 수가 없다.

불교에서는 오계(五戒)라는 것이 있다. 출가자(出家者)나 재가자(在家者)가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기본 계율이다. 오계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 것(不殺生)’, ‘남의 것을 훔치지 말 것(不偸盜)’, ‘거짓으로 말하지 말 것(不亡言)’, ‘남의 부부를 탐내지 말 것(不邪淫, 不姦淫)’, ‘술을 마시지 말 것(不飮酒)’이다. 이 가운데 불음주(不飮酒) 계는 쉽게 어기기 쉬운 계율이라 다른 계를 파계하는 매우 중요한 계율임을 간과하기 쉽다.

‘옛날에 농촌에서 사는 어떤 한 사람이 더운 여름에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음주). 그런데 옆집에서 닭 한 마리가 마당에 모이를 쪼고 있었다. 술 취한 사람은 취한 기운에 배도 고프고 해서 이웃집 닭을 훔쳐(도적) 잡아먹었다(살생). 조금 있으니 옆집 닭 주인인 듯한 아낙이 찾아왔다. “여기 닭 한 마리 보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다. 남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거짓). 그러면서 술에 취해 자기 눈에 보이는 아낙이 예뻐 보였다. 이 남자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그만 아낙을 탐하고 능욕을 했다(간음).’

술 때문에 나머지 네 가지 계율을 한꺼번에 깨뜨린다는 일화다. 이와 같이 우리는 술 때문에 개인의 일생을 한꺼번에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지혜로운 자는 술을 약으로 마실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술을 독으로 마실 것이다. 밝은 달빛 아래 벚꽃 나리는 밤, 가까운 벗과 막걸리 한잔하면서 취흥(醉興)에 젖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임규홍(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