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21일·28일 6면 엿가위·가마솥

엿은 ‘엿장수 맘대로’

2019-04-03     박은정


요즘 아이들은 엿을 제과점에서만 파는 줄 안다. 시대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풍물시장이나 테마민속 장터 등 축제의 현장이 아니면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엿장수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동네에 고물을 수집하거나 사러 오는 단골 엿장수가 사나흘에 한 번 씩은 나타났다.

잘사는 집이나 못 사는 집이나 살림살이 다 거기서 거기였던 시절 엿은 거의 유일하고 특별한 간식거리였다.

엿장수 리어카가 철커덕 철커덕 가위 소리를 내며 동네 골목에 나타나면 너도나도 집으로 뛰어가기 바빴다. 떨어진 고무신, 낡은 양은 냄비, 빈병, 헌책 등 그동안 모아 두었던 고물들을 들고 엿장수에게 달려간다. 간혹 큰 고물이 있는 집은 어른들이 직접 들고 나와 필요한 빨랫비누나 성냥을 바꾼 후 남는 고물의 몫으로 엿을 바꿨다. 항상 고물보다 더 많은 양의 엿을 요구하는 어른들과 조금이라도 적게 주려는 엿장수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엿장수가 엿판에 덮힌 비닐을 걷고 엿을 떼어줄라치면 아이들은 “조금 더 조금 더”라며 보채기도 했다. 또 간혹 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에게도 엿을 떼어 나눠주며 다음에는 고물을 모아 놓으라며 선심을 쓰기도 했다. 고물을 가지고 온 아이가 자기 몫보다 많다며 투정이라도 부릴라치면 “엿장수 마음이야”라며 퉁을 놓기도 했다.

엿장수의 가위는 동네에 엿장수가 왔다는 걸 알리는 신호기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엿을 잘라줄 때 더 요긴하다. 무쇠로 만들어져 일반 가위보다 크고 투박하며 무겁다. 그런 가위를 자유자재로 돌리며 요란스레 소리까지 내는 엿장수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달콤한 엿 맛에 이끌려 커서 엿장수가 될 거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엿장수 거의 사라진 걸 보면 그 아이들이 모두 엿장수가 되지 않은 건 확실한 것 같다.

봄 바람 살랑이는 축제의 계절이 왔다. 이번 주말 엿장수를 만나러 봄꽃축제에나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