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나가야지요” 삶터에서 새 발걸음

■진주 방화·살인 참사 1달, 아파트 주민의 달라진 삶 주민화합 한마당 행사 열고 사랑공동체도 결성 15가구 이주 의사 밝혔지만 유족 3가구만 이주

2019-05-16     백지영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주민을 마주치면 예전과 달리 인사를 자주 나누게 됐습니다.”

진주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끔찍했던 방화·살인이 발생한 지 어느덧 한달째, 참사가 벌어진 해당 아파트의 같은 동에 거주하는 주민 김 모 씨에게 한 달 동안의 아파트 변화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참혹했던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삶터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주민들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같은 사건을 겪었다는 동질감이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조금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다.

수사에 필요한 증거확보를 위해 창문을 열어둔 채 한 달째 불탄 그대로 보존됐던 안인득의 집도 지난 15일 리모델링에 들어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한시름을 덜게 됐다.

어두운 밤이면 그날을 떠올리게 했던 해당 동 뒷편에는 가로등이 새로 설치됐고 기존 가로등의 불빛을 가릴 정도로 무성한 나무에도 가지치기가 완료돼 조금 더 밝은 아파트가 됐다.

김 씨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입주자들에게 이주를 지원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주변 사람들이 언제 이사 가냐는 물음을 던지곤 하는데, 실제 이주하는 가구는 거의 없을 것 같다”며 “생존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LH는 유족을 포함해 참사 발생 동 거주 주민들에게 이주 대책을 제시하며 희망자 조사를 했다.

당시 총 80가구 중 19%인 15가구가 이주 의사를 밝혔지만, 현재까지 유족 3가구만 이주 했을 뿐 타 가구는 이주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끔찍한 악몽을 더는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아곳을 떠나고자 마음 먹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바꿔 아파트에 남기로 한 주민이 많다.

LH 측이 대책으로 제시한 타 아파트로 이주할 경우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보증금 등이 만만찮아 부담되기 때문이다.

참사 이후 깜빡이는 불빛만 보면 불안감이 든다는 김 씨 역시 대부분의 주민처럼 이 곳에 남기를 택했다.

그는 “이주 대책으로 제시한 다른 아파트로 옮기면 돈이 지금보다 3배 이상은 들어서 현실적으로 힘들다. 혁신도시 아파트는 지금 당장은 들어갈 수 있지만 신혼부부 등이 대상인 곳이다 보니 2년 뒤에는 입주 조건이 안 맞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이주가 쉽지 않은 상황, 참사 현장에 그대로 남겨진 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행동에 나섰다.

문 모(59) 씨 등 결집력 있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낀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사랑공동체’를 결성했다.

70여 명의 주민이 힘을 합쳐 지난 6일 아파트 내 야외광장에서 개최한 ‘소통과 어울림’ 화합 한마당 행사에는 500여 명의 사람이 참가했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해진 아파트.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는 주민들 사이에는 다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한 가닥 희망이 샘솟았다.

문 씨는 “눈 감고 귀 막으며 그냥 회피할 수도 있겠지만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활기찬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하나로 뭉쳤다”며 “향후 이사를 하더라도 이 옆을 지나칠 때 ‘그때 그런 아픔과 슬픔이 있었지만 우리 모두가 일어나서 좋은 동네로 만든 추억이 있었지’라고 회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나 있었다. 문씨는 “아직 아픔과 두려움이 남아있지만 ‘우리 동네가 좋아지겠구나’라는 희망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는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예전보다 더 활기찬 마을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