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2019-05-19     경남일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이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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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랑이란 마음과 마음이 만나 하나의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기다린다는 것인데 조바심의 시간을 동반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마음의 색깔은 제각각이다. 하여 연인사이여도 그 방식이나 열정의 강도가 다를 밖에 없겠다. 약속장소에 먼저 가 너를 기다리는 일도 그렇겠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나, 말하는 것은 지극하게 순정하거나 낭만적이고 싶은 갈망에서다. 표면적인 현상에 치우친 편파적인 생각이 개입됐다는 말이겠다. 그러하다면 기다림이 없는 희망이 어디 있겠나, 이러면 뭔가 좀 달라져 보이려나.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희망은 그것을 품은 자에게 기다리기를 요구한다.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희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기다리면서 동시에 다가가는 것, 이것이 성취하기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겠다. 온전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여. 다가가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사랑을 꿈꾸는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오지 않는 네게 이런 말을 뇔지 모를 일이겠다. 문을 열고 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그러면서 나는 차가워진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그리움의 화석이 되어갈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