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부지깽이(최정란)

2019-06-09     경남일보
아궁이에 몸을 넣어 불을 뒤집는다

아직 불붙지 않은 나무들과

이미 불붙은 나무들 한 몸이 되도록

멀리 있는 가지들 가까이 옮기고

바싹 가까운 가지들 틈을 벌린다

공기가 들어갈 틈이 불의 숨길이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한 부분은 교차하듯 밀착되게

나머지 부분들은 엇갈리게 잡목과

장작에 다리와 각을 만들어준다

불꽃의 절정이 각을 무너뜨리면

불이 옮겨 붙은 나는 점점 짧아지고

더 이상 불을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길이가 짧아지면 불 속으로 몸을 던진다

영원으로 날아오르는 불새 아니어도

인생의 질량만큼 불살랐으니 후회 없다

----------------------------------

무쇠 솥은 끓고 있고 아궁이의 불길은 활활 타고 있다. 타는 장작위에 또 다른 장작들을 올려놓고 메케한 연기 속에 불의 숨통을 열어주고 이동을 돕는 가느다란 부지깽이. 가끔씩 회색빛 재속에 제 몸을 식혀가며 마지막엔 길이가 줄은 제 몸마저 불 속으로 던지는 거룩한 그의 역할은 조건 없는 희생과 사명으로 가슴에 와 닿으면 물론이다.

어디 누구도 영원을 함부로 설정할 수 있겠는가, 이 순간의 환경에서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자세는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용기가 아니다.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머지않아 백일홍이 세상을 달굴 것 같다, 우린 누구의 가슴에 함부로 꽃을 피우고 조건 없이 산화할 수 있을까, 감동은 승복으로 이어져 숙연하다.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