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뒷모습에서 보여 지는 아내의 존재

안종훈(인공지능컨설턴트·AI윤리학자)

2019-07-04     경남일보

우리는 평생 우리의 뒷모습을 몇 번이나 볼까. 이중거울을 동원하거나 누군가 촬영해 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뒷모습은 앞모습의 이면에 시각적으로 가려져 있지만 앞면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그 뒷모습은 일상적인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한 가정의 가장의 뒷모습은 가족들의 삶의 무게를 오롯이 드러내어 준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2008)’에서 보여 지는 ‘그랜트(고든 핀센트)’의 뒷모습이 바로 그렇다.

이 영화의 감독은 여주인공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의 남편 그랜트의 뒷모습을 통해 치매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피오나는 부엌에서 프라이팬을 냉장고에 넣어두는 모습으로 치매 증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 스키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그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친구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와인(wine)’이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ㅇ~위~” 하면서 말을 더듬기도 한다.

피오나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느끼고는 이제 “그 단계에 왔다(That’s the stage)” 고 말하면서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마침내 입원 첫날, 아내를 두고 요양원 복도를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그랜트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이렇게 가야만 하는가, 꼭 이래야만 하는가?’ 복도에서 그 십여 초의 순간, 그의 뒷모습은 아내의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는 사랑의 무게감이다.

그랜트는 너무 허무하다. 사랑이란 것이. 모두가 어제 같은데. 영화 주제곡 “어제인 것만 같은데(Only Yesterday)”가 여기서 나온 것 같다.

뒤돌아 걸어 나오는 그랜트의 뒷모습에서 관객은 극도의 연민의 정을 느낀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났을 때까지 말을 잇지 못하거나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한다.

시인 나태주는 ‘뒷모습’ 이란 시에서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요양원에서 중요 상황마다 보여 지는 남편 그랜트의 뒷모습들은 사랑하는 아내의 존재의 의미를 그대로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남편의 뒷모습이다.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시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뒷모습은 사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나의 뒷모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