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영원(문태준)

2019-07-28     경남일보
영원(문태준)

어릴 때에 죽은 새를 산에 묻어준 적이 있다

세월은 흘러 새의 무덤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

그 자란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새가 울고 있다

망망하다

날개를 접어 고이 묻어주었던 그 새임에 틀림이 없다

 


서정의 원리는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발견되거나 혹은 맞섬에서 나오는 동일화를 지칭한다. 이는 자아의 우월이라는 주관에서 벗어나 타자를 이해하고자하는 마음이며 이러한 수평이 사람을 조화롭게 만든다. 가령 시인이 새를 노래할 때 새가 일방적으로 시인에게 이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와 시인이 서로를 발견하고 마음으로 내통하는 일을 말한다. 이렇게 상호과녁이 되는 정서는 모든 존재가 홀로인 것이 아니라 밀어내고 당기며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는 우주와 맥을 같이 한다. 더불어 생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타자를 껴안는 선한 본성의 발현이며 많은 철학적 언명에도 이를 뛰어넘는 실천적 가치는 없다. 생에 대한 긍정이란 우연히 생겨나는 이런 것이다. ‘어릴 때 죽은 새를 산에 묻어’주고 ‘무덤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던 일, ‘자란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새’가 다시 우는 일, 그것을 듣는 나는 참으로 아득하다. 그해 무덤에 앉아 새의 울음을 들으며 ‘날개를 접어 고이 묻어주었던 그 새임에 틀림이 없다’고 위안도 했겠다. 시간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다. 세상에 나타난 것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진 것의 자리에 다른 것이 나타난다. 세상의 모든 존재자들은 나타남과 사라짐이라는 이중 운동을 한다. 윤회가 이러하리. 소멸은 생성을 위한 또 다른 길을 터주고 삶과 죽음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있음을, 그래서 삶이든 죽음이든 생이란 결국 영원성을 결미에 두고 사는 게 인간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생生과 멸滅또한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음을 감득하게 된다.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씨앗으로서의 지독한 긍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