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처마 밑 봄

2019-08-08     경남일보



천지간에 꽃 넘쳐나는데

처마 밑이라고 꽃밭 들이지 말란 법 있을까

다만, 처마란 들뜨는 존재가 아니라고

자칫, 기둥은 염려하는 것이다.

-박해람 (시인)


비움의 공간이다. 먼 곳 풍광까지 조망할 수 있도록 높다랗게 올려 지은 누각으로 대부분 경관이 수려한 곳에 자리한다. 천지간 환장할 봄날, 생명을 품은 서정으로 충만하다. 그러니 ‘처마 밑이라고 꽃밭 들이지 말란 법’ 있겠는가. 이는 존재의 말이 시인을 통로 삼아 최초의 시적 형상 그대로 전달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본디 처마의 기능은, 외관은 물론이고 들이치는 빗물을 막아주고 햇볕을 막기도(받아들이기도)하여 재해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처마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이유인지 기둥의 상단이 빛이 바랜 채 휘어져 있다. 혹여나 천지 꽃바람에 처마가 들뜨지나 않을까, 마음이 들떠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기둥은 염려하는 것이다. 처마와 기둥의 상관관계에서 시인은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지 않은 조화의 정신에 근본을 두고 있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