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전당포(노금선)

2019-08-18     경남일보
전당포 -노금선



칠십 년도 더 된 낡은 건물

가파른 삼층 계단 올라가면

작은 철제 창문 앞에

늙은 주인이 앉아 있다



시집온 지 몇 년 안 된 새댁

남편 사업 망하자

전당포 들락대며 쓸 만한 물건 다 갖다 주고도

결혼 예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풀어야 했다



숱한 사연과 울음이

켜켜이 쌓인 전당포



그늘진 물건들 이름표 달고

주인 기다리는데

찾아오는 이 조차 뜸해진 그곳에

일생을 저당 잡힌 채 늙어버린 주인이 있다



역 건물도 바뀌고 기적 소리도 바뀌었는데

옛 모습 그대로 낡아 버린 전당포

어딘가에 저당 잡힌 우리네 삶도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겠지

------------------------------------------------

그 골목길, 가로등을 피해 드문 인적을 확인하고 화급히 들어서서 손목시계랑 반지 옷가지 등을 저당하고 푼돈을 빌려가는 전당포, 떨군 고개에 뭘 물을게 그렇게 많은지, 대답이 부끄러워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돋보기 너머로 탐색하는 포주에 궁색한 삶이 노출되어야 하는 그곳, 되돌아도 보지 못하고 꺽은 모퉁이, 마른 울음과 이름표를 달고 끝내 되찾지 못한 소중한 것들의 켜켜이 쌓인 아픈 기억이 새삼 꼬집힌다. 한 때 저당을 흥정하고 살았던 우리네가 낡은 필름처럼 영사되고 있다. 저당잡힌 삶의 목록에 세월이 허물어지고 있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