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23일 뒷산에서 발견된 ‘보물 같은 물’

2019-08-28     김지원

 

1994년 7월 23일자 14면에는 가뭄에 시달리던 끝에 발견한 ‘보물 같은 물’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뒷산에서 물 1만t 발견’는 제목의 기사는 일제 강점기 터널공사장에서 저장된 물이 발견돼 애타는 농민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줬다는 ‘보물 찾기’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함양 서상면 추상마을 뒷산에서 생긴 이 신기한 일은 오래전 일제가 이 추상마을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오동마을을 잇기 위해 시작한 터널공사장서 시작됐다. 일제는 함양과 장수를 넘는 육십령 고개를 관통하는 터널을 뚫고 대전에서 진주를 거쳐 삼천포로 가는 철도노선을 계획했다. 이 공사는 1941년 9월 착공된 대삼선(대전-삼천포)인데 일제는 1925년 무렵까지 이 철도공사를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가 실제로 1940년대에 들어서 철도 부설을 본격화 했다. 전시 체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일제는 물자 수송을 위해 일본에서 삼천포항을 통해 한반도를 거쳐 대륙을 잇는 수송루트를 다양하게 확보하기 위해 이 철도 공사를 구체화 한 것으로 보인다. 진주 개양과 삼천포를 잇는 구간과 함께 가장 난코스인 육십령 터널을 뚫는 구간이 가장 먼저 시작됐다. 육십령 구간에 뚫리는 터널공사는 장계공사구에서 맡았다. 1944년까지 8% 정도 공정이 진행됐던 육십령 민령터널은 그해 2월, 전쟁야욕으로 혈안이 된 일제의 ‘결전비상조치요강’의 단기간에 완공할 가망이 없는 공사를 중단한다는 조치에 따라 이해 5월께 중단됐다. 대삼선 자체를 포기한 것은 같은 해 9월의 일로 알려져 있다.

해당 구간은 현재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육십령터널과 비슷한 위치다. 실제로 육십령터널 공사를 진행 하던 중 이 철도공사의 폐사갱을 발견해 당초 터널 환기방식이던 전기 집진지 방식을 폐철도 사갱을 활용하는 송배기 방식으로 변경해 공사비를 절감하기도 했다.

당시 공사를 먼저 시작한 진주-삼천포 구간에는 역사나 정거장 등 시설보다 관사가 먼저 들어서 광복이전 양식의 철도관사 건물 4동이 지어졌다. 삼천포역은 1990년 폐역 되었지만 철도 관사 건물은 주변의 집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대가뭄 당시 이 터널 공사 현장에서 물을 뽑아 쓸 수 있게 된 것은 가뭄을 해소할 대책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 하던 당시 군 관계자들에게 전해진 소식 덕분이었다. 7월 가뭄대책을 논의하던 당시 유효이 군수가 박종환 서상면장에게서 뒷산에 공사를 중단한 터널이 있는데 이 안에 물이 고여 있다는 보고를 받고 현장을 확인해 발견한 물을 가뭄해소에 활용했다. 당시 중단된 터널은 길이 1㎞, 높이와 폭이 3m 규모 였다. 공무원과 주민 등 30여명이 포크레인 2대를 동원해 이틀간 철야작업을 벌여 찾아낸 이 물은 양수기 4대를 동원해 뽑아낸 후 12㏊의 논에 뿌려져 가뭄해소에 한 몫을 했다.

김지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