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과 결정의 미학

안종훈(인공지능컨설턴트·AI윤리학자·박사)

2019-08-29     경남일보
안종훈

우리는 매일 수많은 판단과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인터넷 조사에서 성인은 하루 3만 5000번의 결정을 한다고 한다.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결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일반인 뿐 아니라 예술가와 정치가 등 모두에게 동일하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4악장 첫 소절에는 ‘어렵게 이루어진 결심’이란 템포지시와 함께 독일어 12마디의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라는 글귀가 있다. 마치 ‘운명’ 교향곡의 ‘빠바바 밤~’하고 시작되는 것을 ‘운명의 노크소리’라 부르는 것처럼,

이 글귀는 베토벤이 어떤 일에서 음표를 글로 표현한 철학적 자기 성찰의 메시지로 해석되는 등 다양한 얘깃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 어떤 사안의 전후좌우에 대한 판단을 먼저 하게 된다. 그 판단은 ‘나’에게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나 상처를 주지 않음을 전제로 한 이성적·합리적 판단이어야 한다. 그 결과 역시 주변 모두에게 유익한 것 이어야 ‘올바른’ 판단과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 개인적 ‘욕심’과 ‘이기심’이 개입되는 것이다.

최근 법무부장관 지명관련 서울대 조국 교수의 언술행위를 보면, 과연 올바른 판단인지 모호하다. 조국 교수와 딸 관련 대학들의 학생들이 촛불집회를 하면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내려놓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장관 후보자로서 정책들을 발표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성적 상황판단으로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결단의 미학이 필요한 것 같다. 헌법 위에 국민 정서법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장관 자리에 오른다면 그가 추진하는 혁신정책에 국민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지명자와 피지명자 공히 그것이 모두에게 유익한 결정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4악장에서 비올라와 첼로의 물음에 바이올린이 답하는 듯이 들리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꼭 그래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래야만 한다’ 라는 답이 나온다면, ‘끝이 좋으면 모두 좋아’라는 16세기 셰익스피어 희극을 21세기 한국의 현실에서 또 한 번 더 증명해 보이는 결연한 의지와 신념 그리고 역사적 소명의식을 보여 주길 당부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