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길

박수희(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2019-09-04     경남일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릴 적 모두가 한 번은 들어봤을 그런 질문이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를 고르거나 어느 한쪽도 고르지 못해 울어버리거나 둘 다라는 현명한 대답을 하곤 한다. 나는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앞서 말한 대답이 아닌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어릴 때 내 선택은 아빠였다.

잔소리를 자주 하던 엄마보다 화도 안 내고 장난도 잘 치고 힘도 센 그런 아빠가 좋았다. 아빠 역시 나를 참 예뻐했다. 밥 먹을 때 어딘가로 이동할 때, 언제나 쉼 없이 아빠와 대화했고 엄마는 그런 우리를 보며 질투했다. 한때 꼭 아빠와 비슷한 사람이랑 결혼하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지 충분히 설명되리라 생각한다.

중간에 싸우고 사이가 서먹해졌을 때도 있었지만 금방 회복되었다. 내가 내민 손에 남몰래 기뻐하고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사람이 아빠 말고 또 어디 있을까.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늘 똑같이 그 자리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점점 말라갔고 코에 원인 모를 상처가 났다. 당뇨도 있고 흡연에 음주까지 즐기니 병이 생겨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아빠가 아픈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코를 치료하러 동네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대학 병원에 가라는 답변을 주었다. 그날 우리 집 단톡방은 조용했다. 대학 병원에서 아빠에게 내린 진단명은 기저세포암이었다. 대학 병원이란 단어가 나올 때부터 이미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기저세포암을 검색하고 있었다.

수술 전날, 병실을 지키는데 도저히 잠이 안 와 아침 무렵 눈을 붙였다. 그마저도 길어지는 수술 시간에 금방 눈을 떴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편하게 자라고 기숙사에 가라 말했다. 수술 결과는 사진으로 받게 되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생각보다 큰 상처에 마음이 철렁였다. 아빠 앞에선 웃긴다고 말했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는 어느샌가 늙어버렸다. 얼마든지 병에 걸리고 아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내 옆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사실들을 받아들이려니 자꾸 눈물이 났다. 어쩌면 언젠가는 아빠를 보내줄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래도 내 옆에 있어 주길.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