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소(홍미애)

2019-09-05     경남일보
 





너는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는데

어째서 내 마음에는

는개비 내리는가

-홍미애



실려 가는 것들의 뒷모습은 왠지 불안하다. 한참 따라가다 보면 눈물이 난다.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듯 버티고 선 관절의 뒤태가 그렇다. 저들의 최후는 저들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질주하는 도로 위의 트럭을 보라. 허연 거품을 물고 우왕좌왕 실려 가는 돼지 떼, 케이지에 담겨 서로의 볏을 쪼아대며 날개를 부딪는 닭들의 반경, 사지가 엉킨 채 끝까지 처음의 표정을 간직하며 실려 가는 새하얀 마네킹들.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틀림없이 가고 있는 중이다. 어제에 떠밀려 내일로 가야만 하는 인생이라면 참 씁쓸하겠지만, 도착 지점이 어딘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사람이라면 주어진 하루하루가 감사할 따름이겠다. 실려 가는 소의 눈망울에서 우리는 본다. 어차피 반납되어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저들은 알고 있다는 것을.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