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유일 희생자 유치준씨 항쟁 참여자 인정받아

진상규명위원회 “사망원인 등 참여 근거 충분”

2019-09-05     이은수 기자
부마민주항쟁 당시 주검으로 발견돼 현재까지 유일한 희생자로 알려진 유치준(당시 51세)씨가 40년 만에 항쟁 참여자로 인정받았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서울 종로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제54차 회의를 열고 유치준 씨를 관련 사망자로 의결했다.

자료 검토를 더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낸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11명 모두가 인정했다.

위원회는 유치준 씨 사인이 물리적 타격에 의한 외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고, 사고 지점에 시위가 격렬하게 발생했던 점 등을 종합해 항쟁 관련 사망자로 판단했다.

이어 당시 경찰이 시신을 암매장하고 검사에게는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고 허위 보고한 점 등 사망 사실이 은폐된 점도 이번 결정에 반영됐다.

유치준 씨는 1979년 10월 19일 항쟁 당시 주검으로 발견됐고 타살 혐의 등 기록이 경찰 문서 등으로 남았지만, 그동안 ‘신원을 알 수 없는 행려자’로 분류돼 논란이 됐다.

위원회는 당시 마산경찰서 출입 기자가 입수한 경찰의 변사 발생보고서와 법의학자 자문 결과 고인의 사망 경위가 외부적 요인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항쟁 참여자로 인정했다.

홍순권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유신체제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선 마산, 부산지역 시민을 국가가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공권력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고인이 숨진 것으로 판단한다”며 “지난 40년 동안 고통을 겪었을 유족들이 위로를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씨도 “결정을 듣고 기쁜 줄 알았는데 막상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게 떠올랐다”며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서 민주주의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이다.

이은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