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낙과(김왕노)

2019-09-08     경남일보
낙과(김왕노)

한 때 떫었다는 것은

네게도 엄연히 꽃 시절이 있었다는 것

네가 환희로 꽃 필 때 꽃 피지 못한 것이

어디나 있어 너는 영광스러웠던 것

너를 익히려 속까지 들이차는 햇살에

한 때 고통으로 전율했다는 것

익지 않고 떨어진 낙과를 본다.

숱한 네 꿈을 꼭지째 뚝 따버린 것이

미친 돌개바람 탓이기도 하지만

꼭지가 견디지 못하도록

스스로 가진 과욕의 무게 때문

한 때 나도 너와 같은 푸른 낙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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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과육을 본다, 함부로 몸집을 키우다

튼실하지 못한 꼭지 탓인지 가지를 무수히 흔드는 돌개바람 탓인지

더 이상 익어가지 못하고 추락해 있는 모습이 우리의 한 때를 닮았다.

내려다 본 땅과 엎드려서 보는 하늘,

꽃으로 피어 햇살을 받으며 더 없는 꿈을 영글던 찬란한 한 시절과

과욕으로 인해 추락해 안타가워 하는 사태가 시사되는 한편의 시가 이 시대의

교훈처럼 읽힌다.

어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나 바람 닿지 않고 견디는 가지가 있겠는가

낮은 음자리표 같은 울음이 절룩거리며 찾아온다.

새삼 뒤꼭지를 만지며 세상의 벽을 다시 더듬어 볼일이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