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가 보고 싶은데 상영관이 없네요

김예진(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2019-09-15     경남일보
얼마 전 베를린 국제 영화제 Generation 14Plus 부문에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공식 초청됐다. 벌새가 수상했다는 말을 듣고 꼭 영화관에서 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 예매 창을 들락거렸지만 결국 예매할 수가 없었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진주시의 어느 영화관에서도 벌새를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칸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한 부문에서 당당히 수상한 작품인데,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도 조용할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날이 떠오른다. 당시 거의 모든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독점하다시피 기생충이 상영되었고,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벌새는 뭐가 달라서 하루에 한 번을 상영하지 않는 걸까.

사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계속 있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이후 반향을 일으키고 해외 각지에서도 폭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특히 일본에서는 출간 나흘 만에 3쇄를 찍었지만, 당시 언론이 조용해 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지 못했다. 약 백오만 명의 구독자(9월 10일 기준)를 이끄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도 그렇다. 그는 PD 김유라 씨의 도움으로 유튜브를 개설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가 출간 직후 4개 서점(교보문고, 영풍문고, 인터파크, 예스24)에서 모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고, 유튜브와 구글 CEO가 직접 만남을 청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할머니가 유튜브를 한다니 신기해서 보는 거겠지”라고 말한다.

동남아순방 강경화, 유명희, 김현미, 유은혜 수행장관이 함께 찍힌 사진에 달린 댓글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실력으로 뽑는 게 아니라 할당량으로 여성을 30%나 채우면 되겠냐”는 요지의 비난이 아주 장문으로 달려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여성 장관 30% 이상 임명’에 대한 말이었다. 여성 장관들이 그 공약으로 빛을 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겠지만, 이미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폄하되거나 사라진다.

여성이 이룬 업적은 그저 요행이 된다. 시류를 잘 타서, 독특해서 그렇다고 성공한 여성들 뒤에는 변명이 따라붙는다. 언론의 대대적인 스포트라이트도, 사람들의 환호성도,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한다. 현 정부의 여성 정책이나 미투 운동으로 인해 성 인식이 제고되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다. 나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아 온 국민이 환호한 날을 기억한다. 오늘 내가 끝까지 벌새를 예매하지 못한 일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