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함’과 ‘적당히’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2019-09-16     경남일보
전문분야에서의 언어학은 계보가 다양하고 연구 분야가 복잡하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언어의 특성을 6가지로 구분하는데, 언어가 말소리와 의미가 결합되어 의사소통을 위한 기호라는 기호성(記號性), 언어의 말소리와 의미는 필연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자의성(恣意性), 모든 언어는 음운·단어·문장 등이 체계를 이루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사용된다는 규칙성, 인간은 기존에 알고 있는 언어 지식과 규칙을 바탕으로 무한한 언어를 만들어내는 성질이 있다는 창조성, 언어 기호는 언중(言衆)들 사이에서 맺은 사회적 약속이기에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사회성, 그리고 언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소리나 의미가 변화한다는 역사성이 있다.

그러나 사회성이 있음에도 무지나 무관심에서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역사성을 바탕으로 의미가 변질된 경우도 있는데, 전자의 예에 ‘칠칠하다’가 있고 후자에 ‘적당히’가 있다. 우리말에 ‘야무지고 반듯하다’는 의미의 형용사 ‘칠칠하다’는 말은 ‘칠칠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우세하여 일반 언중은 ‘칠칠하다’를 부정적 의미로 오해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옆집 며느리를 칭찬한다고 쓴 ‘칠칠함’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또한 ‘적당(適當)하다’는 형용사가 부사로 파생된 ‘적당히’도 ‘어떤 조건이나 이치 따위에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게’라는 원래의 뜻과 ‘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만 요령이 있게’라는 의미에서, ‘알맞게’라는 전자보다 후자가 우세하여 ‘대충 대충’의 의미로 더 널리 쓰인다. 이는 부정적 의미를 긍정적인 어휘로 포장하려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10월 9일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70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가 1991년 국가 경축일에서 제외되었고, 2013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 되었다. 오는 한글날에는 하루를 논다는 생각보다는 한글의 우수성을 인지하고 이를 잘 가꾸어 실제 생활에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이자 언중(言衆)의 기본적인 자세임을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