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위로

2019-09-19     경남일보

오남매 키워낸 집

장독간엔 빈 독만 늘어나고

홀로 남은 노인네 적적하실라

마당 가운데 오두마니 채송화 핀다.


-강옥



저곳에서 딱 한 달만 살아 봤으면. 허물어진 돌담 너머 넘실거리는 파도의 속살이나 만져봤으면. 그래! 먼 수평선에 가닿은 일몰에 한동안 시선을 빼앗겨 살다 보면 언젠가는, 떠나버린 사람의 거룻배가 마당 한가운데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당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멘트로 도포한 빈 마당에 한 무더기 채송화가 피었다. 허공에 밑줄을 그어 놓고 온종일 바람의 기척에 귀를 세우는 빨래집게와 가까스로 떠받치고 있는 장대의 그림자가 덩그런 오후. 시인은 ‘위로’의 꽃말을 찾아내어 홀로 남아 빈 바람 가득한 노모에게 건네고 있다. 적막의 휘장을 걷어내는 듯 거친 틈을 마다않고 고개 내민 저이의 얼굴이 어찌 아니 반가울까. 때론 풀 한 포기, 한 떨기 꽃이 삶의 위로가 되는 까닭이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