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자기 방어

박선영(법무법인 진주·변호사)

2019-09-24     경남일보
박선영

얼마 전 특정 인사의 성범죄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있었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되어 대법원 최종심을 두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면식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도 많다. 또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행동한 것은 맞지만 합의된 관계 내지 암묵적인 동의하에 일어났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성범죄는 목격자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상황을 경험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험 진술, 사건이 발생한 경위 및 환경, 그밖에 남녀의 물리적인 차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런데 피해자가 사건 발생 즉시 신고하지 않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처벌보다는 진심어린 사과’만 원해서, 피해자로서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신고를 망설이다 시간을 지체한 경우일지라도 그러하다.

최근 성범죄와 관련된 판결에서 ‘성인지 감수성’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여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에 노출되거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의 골자다. 이러한 변화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을 일이다.

얼마 전 한 여성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30년 전 친척으로부터 성추행을 여러 번 당했고 그로 인해 ‘남성혐오증’까지 생겼다며 늦었지만 용기를 내어 고소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공소시효 문제로 처벌을 할 수 없는 경우였다. 안타까웠다. 성범죄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들은 숙지해야할 것들이 있다.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는 것이다. 또 만약의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피해사실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알려야한다. 그래야 피해자가 숨는 아이러니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