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비밀이다(김혜숙)

2019-10-20     경남일보
비밀이다

/김혜숙

오래도록 가부좌하던 난분蘭盆
우러러보던 근심 한 줄기가
입술을 연다
필시, 내게 할 말이 있을 터,
곡진한 기다림에게
낮고 여리게 말하고 싶은 거
작은 종소리 울린 것 같아라
실눈 뜨는 눈언저리
촉촉한 슬픔 끼 알아채는
애간장 저리는 가만한 때
홀로 한 겹 유한有限을 여는구나
깊은 비밀이 생기는구나
너무 고운 비밀은 아픔이구나
애잔한 사랑은 더디게 더디게 오느니
밤 깊자
귀뚜리 한 마리 또르르 굴러와
별빛 몇 데리고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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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관조다, 사물의 내밀한 생성을 읽어내고 시적 감성을 이입하여 나의 내면을 동화시켰다. 떨기의 난의 이력과 무언의 교감을 나누며 파장을 일으키는 저 곡진한 슬픔의 진원지는 무엇일까. 존재의 저 가지 끝에 생존의 고통을 나직이 내뱉는 쉼표 정도일까. 한 오라기 말씀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슬픈 눈빛으로 젖어 오는 한 촉의 이파리에 공명을 읽어내는 화자의 시선은 어디에 맞추었을까, 거 또한 비밀인 듯, 균열의 틈새에 스며드는 근심도 저 우주의 버거운 섭리에 기인하는 것, 비밀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견디는 것. 압정에 꽂이는 통증도 감당하는 것이다. 저 깜깜한 원시의 어둠처럼.
 
/주강홍·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