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의 이별

2019-10-21     경남일보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결실과 성취, 그 이후의 고독에 생각은 내면의 심연속으로 빠져든다. 이별을 예감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이 계절의 이별은 더욱 슬프다. 석학 이어령교수가 우리와의 영원한 이별을 예고해 충격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쓴 ‘저 물레에서 운명의 실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을 읽으며 사고의 깊이를 더해 왔던 터라 100세의 김형석교수와 함께 정신적 지주로 삼아온 사상가 였다. 그가 연출한 88올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 요란하고 역동적인 태권도시범 후 정적속에 나타난 굴렁쇠소년을 현장에서 본 감동은 지금도 뇌리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탄생’을 주제로 작품을 쓰고 있다고 한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며 최초의 빅뱅은 곧 신의 창조였다는 그가 쓰는 탄생에는 어떤 화두를 담을까 궁금해진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우리의 문학을 꾸짖고 젊은이들에게 사상적 체계와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그였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또 하나의 작품구상에 나서 숙연해 진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과거를 잊고 자신이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참 어리석은 일”이라는 그는 항상 우리를 사색케 한다. 지나온 세월을 회오(悔悟)케 한다. 늘 새로운 이데아를 찾는 사색의 세계를 개척케 한다. 죽음은 곧 탄생이라는 화두도 그러하다. 이 가을, 그가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하얀 겨울, 아니 영원히 함께이고 싶다. 이별은 슬프기 때문이다.
 
변옥윤·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