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시간을 택배 받다

2019-11-03     경남일보
시간을 택배 받다-이호원


나는 매일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시간을 택배 받아 오다가
어느 날 가슴 통증이 심해
시계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다
걸음이 필요한 곳도, 초대장도 없이
시계 속에 모든 것을 저당해두고
잠자고 밥 먹고
시계가 정하는 대로 손발을 놀리고
숨 쉬며 살고 있다
한 때 시계 밖으로 나가
녹음 우거진 숲도 보고
저녁나절 붐비는 저자거리도 보고 싶었지만
시계는 귀찮은지 손짓마저 거부하고 있어
마음을 돌려 먹었다
울 밖에서는 잘게 쓴 걸음으로 요리도 하지만
지금은 통 크게 내 전부를 시계에 맡겨 두고 산다
요즘 편하다



지금 나는 요양병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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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0으로 해서 대상이 자오선을 지나는 지점이 현재의 시각이다.

정오는 내 머리꼭대기에 태양이 지나갈 때를 의미한다, 시각의 양적인 간격이 시간이라면 그 자연과학을 임의의 약속으로 형상화 한 것이 시계이다, 시간의 계기이다, 우주의 시간을 감성적 시간으로 치환하여 삶을 변주한 이 시는 화자의 일상을 암시하고 있다, 시간을 접고 시계의 틀에 스스로를 잠시 견디는 이 시는 제한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공명으로 다가온다. 시공을 넘어서 쉼표 같은 공간 속에서 삶을 머물게 하여 내재된 나를 관조하고 있는 언술이 저 존재의 가지 끝에 머무는 삶의 시간을 엿본다. 우린 너무 시계의 초침에 매달려 살지는 않았는지.
 
/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