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시작을 위한 희생

/이석기(수필가)

2019-11-17     경남일보
꿈이란 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꿈이 되는 건 아닐까? 현실과 거리가 있으므로 해서 꿈이 될 수 있는 것이며, 현실과 거리가 멀수록 아름다운 꿈이 된다. 물론 현실은 꿈만큼 아름다울 수야 없겠지만, “살다보니 이런 게 아니었는데,”그리워하며 꿈꾸며 마지않던 삶이란 결단코 이런 게 아니었을지라도 꿈을 가진다는 건 여유이자 멋스러운 지혜이기도 하다.

좋은 꿈이 탄생되자면 현실을 아름답게 살아야 함을 누가 모르랴. 원했고 바랐던 바가 아닌, 불행한 삶을 살지라도 찬란한 꿈을 꿀 수 있는 그러한 꿈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꿈을 꾸면서 현실을 극복하는 힘을 얻어서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자. 뭔가 허망스럽고 뭔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될지라도 무엇이나 극도에 이르면 차라리 무감각해지고 마침내 그 무감감이 쾌감이 된다는 걸 믿자.

진실로 고독한 사람은 고독을 즐기며 고독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니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아픔도 극복해내는 최선의 방법이야 말로 그 아픔이 극에 다다른 나머지 오히려 그것을 즐기며 사랑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좋아하고 사랑해 버리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불평과 불만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불행한 이들이 참으로 많은데도 불행스럽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달관에 이렀기 때문이다. 살 만하다는 이들조차 이맘때가 되면 왠지 모를 우울과 비애를 느낀다하지 않는가. 가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무엇을 위해 꿈꾸고 탐하며 즐기려는 것조차 잊은 채 절박한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그 무엇이 태어나 주기를 바라는 건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우리에게 우울과 비애를 느끼게 할지라도 이제는 인사를 하자, 불행과 아픔을 사랑하는 경지로 이룰 수 없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이별을 고할 때다.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의 뜻이며 마지막은 언제나 시작을 위한 희생이 아닌가. 기쁨이야말로 슬픔에서 태어나고 가을이 저물어야 반드시 겨울이 열리듯 이별 없는 만남과 끝이 없는 시작이 어디 있으랴.
 
/이석기(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