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꽃병

주강홍(진주예총회장)

2019-11-17     경남일보
꽃병-김윤식

장미꽃 한 송이를 물었다

 
몸매가 관능적(官能的)이다

탱고를 추는 여자의 시선(視線)이 불빛보다 붉다

탕 하고 무슨 총소리 같은 게 들린 것도 같다

정적(靜寂)을 깨는 것과 마찬가지로 흔히 깨뜨리는 것 중의 하나

지금은 막 춤을 끝낸 하나의 이미지처럼

테이블 위에 있다

장미꽃 한 송이를 몸의 가장 깊숙한 곳에 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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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미학, 여인의 허리선을 닮은 꽃병에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매혹적이다, 검붉은 립스틱으로 내 몸 어딘가를 함부로 더듬고 싶은 유혹 같기도 하고, 현란한 음악에 열정의 땀을 흘리고 난 뒤의 나른한 미소 같기도 하고, 한바탕 치열한 소란 후의 가픈 숨과 관능의 후위 같기도 한 저 떨기의 장미, 지금 탁자 위에서 정물하면서도 고요한 그러나 정숙을 고집하지 않을 것 같은 매혹으로 파동의 벽을 친다.

장미는 적어도 소담스럽고 수동적인 것보다는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 이다, 달구어지고 언제라도 한 바탕 유희를 준비하고 휘갈기고 깨지고 철철 넘치는 혈기로 엉겨 붙고 싶은 꽃이다, 지금 꽃병이 꽃을 몸 깊숙이 물고 있다, 한바탕 난리를 준비하고 있다. 누구의 흰 목덜미를 물고 피 철철 흘리며 광야로 내닫고 싶은 늦가을, 모조리 흐트러지고 싶은 이 계절에 짧고 쉽게 그러나 생각이 많게 쓴 한편의 시가 격동을 감당하고 있다.
 
/주강홍(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