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눈 온 날

2019-12-12     경남일보

눈 온 날 -나혜경

너와 이별한 날은 발자국이 먼저 돌아섰고
네가 다시 온 것도 발자국과 함께였다
발자국이 만나면 눈밭에도 꽃이 피어
겨울도 춥지 않았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받은 영감을 포착하는 순간 화면은 정지가 됩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여러 갈래 상상을 펼치게 합니다. 한 사람이 오롯이 담긴 발자국이어서 그 사람을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저만치 나섰다가, 되돌린 발자국을 데리고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우리는 까마득히 돌아선 사람을 이토록 하얀 세상으로 소환하기도 해보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까지도 아니, 어쩌면 이미 돌아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방금 쌓인 눈을 조금 걷어보면 어떨까요. 그 사람의 발자국이라면 이별이 아닌 재회로 읽겠습니다. 이 겨울은 아마도 꽃밭이겠지요.

/시와경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