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 수장의 위엄

조정래 함안군청 가야사담당관

2020-01-16     경남일보
조정래

 

삼국사기 권 49 열전 제9에 연개소문에 대한 글이 있는데 “몸에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있어서 좌우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그때의 사회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는 철기가 꽃피던 시기였으며 그중에서도 칼은 살상의 최첨단 무기였다. 전쟁터에서의 칼의 위력을 생각해 보면 아마 일반인들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칼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더구나 한 자루도 아니고 다섯 자루나 차고 있으니 그 위엄이 얼마나 대단했으랴. 그러니 좌우 어디에서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연개소문의 위엄도 아라가야 수장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말이산 8호분에서는 74.2㎝의 둥근 고리칼(환두대도), 부식되어 70.3㎝만 남은 금으로 손잡이를 장식한 대도, 21.5㎝만 남은 대도와 함께 소도 한 자루, 도 일곱 자루, 검 두 자루 등 총 열세 자루의 칼이 출토되었다.

5호분에서도 44.5㎝의 대도 등 세 자루, 도 열 자루 등 총 열세 자루의 칼이 나왔다.

6호분도 부식되어 40.2㎝만 남은 은제 둥근 고리칼과 39.4㎝, 33㎝만 남은 대도 두 자루, 도 네 자루 등 일곱 자루가 나왔다.

연개소문은 다섯 자루만 차고도 좌우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열세 자루를 찬 사람의 위엄은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마도 전후좌우 사방팔방에서도 그를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또한 6호분과 8호분에서도 마갑총처럼 말 갑옷이 나왔는데 아라가야 수장을 보호하는 철기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문54호분에서 발굴된 금제쌍룡문장식대도는 환두 전체를 순은으로 만든 유일한 것이며 금으로 만든 두 마리 용 장식이 덧붙여져 있다.

2017년 발굴된 72㎝의 은상감대도는 정면으로 본 봉황의 모습을 칼몸 전체에 은으로 새겼는데 이는 국내 첫 사례이다.

뿐이랴. 4호분의 43.9㎝만 남은 둥근 고리칼은 칼집도 쇠로 만들었으며 손잡이에 마를 감고 다시 비단을 감아서 사용한 것이다.

아라가야의 수장. 많은 유물이 도굴되어 본 모습을 잃었지만 여전히 찬란한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한때 사라진 왕국, 비운의 왕국으로 불렸던 가야가 우리 눈앞에 선연히 드러난다. 우리가 가야사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가야사를 새롭게 정립해야하는 이유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