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너에게 쓴다

2020-01-19     경남일보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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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고 지고, 열매 맺고 떨어지고, 단풍잎 물들고 낙엽 지고 마침내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곳에서 내 생은 풍화된다. 나는 그대로 나였다가 너였다가, 네가 나인 것으로 내가 詩인 것으로. 동화된 우리는 우리가 된 줄 모르고 외길을 간다. 외길의 생이 신발 하나 끌고 간다. 일생을 글만 쓰다가 글의 길에서 신발이 닳은 일은 즐거운 고통이겠다. 시인의 지난한 생을 먼저 읽었기에 글자마다 날숨이 들린다. 너에게 쓴 마음이 내 일생이 되는 일, 글 기둥 부여잡고 산 세월이 아깝지 않을 일,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기에 시인에게 깊고 따뜻한 마음 한쪽 떼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