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백서(白書)의 의미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

2020-01-20     경남일보
학교의 언어교육이나 일반인들이 외국어를 학습할 때 가장 곤혹스런 것이 어휘의 중의성(重義性, ambiguity)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공부할 때 눈(雪)과 눈(目), 말(言)과 말(馬) 또는 말(斗)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 중의성은 의사전달에서 약간의 혼란을 초래하기는 하나 문학의 경우, 독자의 정서를 새롭게 하고 사고를 넓게 하거나, 미학적 언어를 추구할 수 있으므로 정확하고 지시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와 다의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언어활동에서도 중의성이 적용되는데, 특히 한자에서 두드러진다. ‘흰 백(白)’이라는 한자는 ‘희다(黑白)’라는 색채어가 주된 의미이지만 ‘밝다(明白)’, ‘깨끗하다(潔白)’, ‘사뢰다(主人白)’ 등의 의미로 쓰인다. ‘백일장(白日場)’도 ‘글 짓는 솜씨를 겨루는 대회’이지만 ‘가장 공정한 시험장’이란 뜻이 담겨있고 ‘백서(白書)’도 마찬가지다.

‘백서’는 정부가 정치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문제에 대하여 그 현상을 분석하고 장래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발표하는 공식 보고서를 말한다. 17세기 영국에서 정부의 외교 정책 보고서 표지에 흰 표지를 붙인 것에서 비롯된 이 백서(white paper)는 단순히 표지의 컬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white’는 ‘희다’의 의미도 있지만 ‘명백한, 신뢰할 수 있는’의 뜻도 있기에 ‘가장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술한 책’의 의미가 크다.

검찰과 언론 민낯을 기록하겠다는 목적의 ‘조국백서’가 나온다고 한다. ‘조국백서’ 추진위는 “조국백서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지명부터 시작된 검찰과 언론의 ‘조국 죽이기’에 맞서 대항했던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백서다. ‘조국사태’는 검찰의 불법적 피의사실 공표와 이를 받아쓰며 단독·속보 경쟁을 벌인 언론의 합작품이다"라고 했다.
 이어 "전대미문의 ‘검란’과 ‘언란’, 그에 맞선 시민의 촛불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며 제작 목적을 밝혔는데, 현재 수사 중이고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백서를 발간하는 것이 전대미문이다. 근자의 진보진영 사이비 지식인들의 행태에 눈감고 귀닫고 지내지만,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어서 욕을 한마디 하고 싶지만 선생 체면에 그럴 수도 없던 차에 “개 ×도 모르는 것들이 별 짓을 다하네”라는 한 초로(初老)의 말이 귀에 들린다.
 
문형준(진주동명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