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칼의 미학3

2020-02-02     경남일보
칼의 미학 3

/김광선



칼이란 날이 푸르게 서 있을 때

갈고 닦아야만 오래도록 예리한 날을 유지했다

관계란 가까우면 예의를 잃기 쉬웠다

광대가 춤추는 칼이 아니었듯

충직한 세끼니 밥에서 차마 놓을 수 없어

내리치고 긋고 저미고 다지는 도마에

손금 같이 고스란히 받아낸

앙금으로 선명한 자국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때로 굳어가고

조금씩 멀어지고 오해와 원망이 쌓이는 삶의 자리

관계란 시간 앞에서 무디어졌다

하루를 마감하며 꼭 그만큼 무디어진 칼들

세상 어디에도 내가 꿈꾸는 삶이 없었듯

숫돌과 쇠가 묵묵히

시간 앞에서 똑같이 닳아갈 때

민낯으로 다가가 서로 아파야 하는 자리

삶의 더께가 까맣게 눈물처럼 얼룩진다

한 겹만 벗겨내면 푸르디푸른 관계의 청명함

혹여 휘지는 않았는지

칼날에 오래오래 실눈을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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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단절의 도구이지만 또 엉키고 흐트러진 것을 단박에 처리하기도 한다. 다만 휘어져서는 안 되는 관계. 오해와 원망이 쌓이는 삶의 자리에서 푸르게 날이 선 칼날로 양단하는 것은 민낯으로 서로 아파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주저함이 있다. 쇠와 숫돌이 만나서 시간을 망설이는 것은 앙금으로 선명한 자국들과 낭자한 눈물을 감당하는 묵직한 도마의 고통 때문일 것이다. 얼룩진 한 겹 껍데기를 벗기고 가식을 긁어내듯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 곡진한 시 한편을 만난다. 남의 치수를 함부로 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어두운 밤의 고통을 삭여내기가 쉽지 않을 때가 참으로 많다. 그대에게로 오래 뜬 실눈이 시리다.(주강홍 진주예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