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내 몸에 짐승들이

2020-02-09     경남일보

내 몸에 짐승들이

/권대웅



늑골에 숨어 살던 승냥이

목젖에 붙어 있던 뻐꾸기

뼛속에 구멍을 파던 딱따구리

꾸불꾸불한 내장에 웅크리고 있던 하이에나



어느 날 온몸 구석구석에 살고 있던 짐승들이

일제히 나와서 울부짖을 때가 있다

우우 깊은 산

우우우 울고 있는 저 깊은 산



그 마음산에 누가 절 한 채 지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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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살았습니까 나는. 왜 그렇게 깊이 들어가 나를 갉아먹는 게요. 궂은 날 뼈마디 시린 것이 너희 때문이었나요. 혼자에 길들여지지 마라는 말인가요. 사냥꾼을 길들이라는 말인가요. 하지만 어쩌나요, 이미 혼자에 익숙해졌고 사냥꾼은 필요치 않은데 말이지요. 딱따구리가 정강이뼈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승냥이 하이에나가 내장을 파먹으면 또 어떻습니까. 제 소리를 가진 모든 것이 짐승의 울음으로 위협한들 특별할 게 없습니다. 어둠이 덤비고 나이가 덤비고 시름이 덤빈들 어쩔 도리 있겠습니까. 서로 잡은 것 없으니 한세상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요. 가진 것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한 일입니까. 생의 어디쯤 공양주 없이 살아도 좋을 고독한 절간 하나 지어볼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