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 여행[23]튀니지

2020-02-10     경남일보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지리적인 관점에서 튀니지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있다. 바로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라는 말이다. 지리적으로는 위로는 유럽, 아래로는 아프리카와 닿아있고 오랜 아랍의 지배를 통해 언어와 문화, 종교 등의 관점에서 아랍의 일원이 되었다.

튀니지는 지중해 남쪽 이탈리아 시칠리 섬과 불과 80여 ㎞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랍과 부대끼며 이루어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에는, 기원전 7~8세기부터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세워져 로마를 위협하는 강대한 문명을 꽃피웠고,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무너뜨리고 로마 문명을 이곳에 세웠다. 그 이후엔 중세의 막을 연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의 지배를 받았고 연이어 아랍에 의한 지배로 아랍문화가 지금까지 뿌리내려 있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도 했다. 한 번도 토착민족에 의해 다스려지지 못한 외세에 의해 지배되어 온 슬픈 역사의 땅이기도 하다.

 
튀니지의 공식언어는 아랍어이지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탓에 제2국어로 프랑스어가 사용된다. 헌법에서 종교가 이슬람교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이슬람 국가기도 하다. 하지만 차도르를 착용을 하지 않고,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지하고, 술의 판매가 공개적이진 않지만 가능하고, 가까운 유럽처럼 일요일을 공휴일로 하고, 돼지고기를 먹는 등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는 북아프리카의 파리라고도 불린다. 북부 아프리카의 도시지만 프랑스풍의 거리, 이슬람 모스크, 카르타고의 고대유적, 지중해의 상쾌한 바람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튀니스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유럽의 도심을 거니는 기분이다. 도로가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아프리카의 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운타운인 하비브부르기바 거리에는 유럽의 차들이 대부분이고, 거리의 표지판은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프랑스 식민지의 잔영이 남아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방인의 침략을 받았어도 튀니스는 수천 년 세월의 숨결이 서린 이슬람의 땅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바브 엘 바흐르를 지나면 이슬람 전통시장인 수크와 구시가인 메디나가 이어지며 미로 같이 이어진 좁은 길이 나타난다. 길목으로 붉은색 펠트 모자를 쓴 할아버지들이 오가고 그늘진 투박한 길은 수크라고 불리는 시장으로 이어진다. 수백 개의 골목에는 튀니지의 전통 인형과 도자기, 공예품들이 팔린다.

시장 골목 한 가운데로 들어서면 튀니스를 대표하는 지투나 모스크가 나타난다. 지투나 모스크는 메디나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지투나는 올리브라는 뜻으로 튀니지는 세계 올리브 생산이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1300여년의 긴 역사가 담긴 지투나 모스크는 유럽과 로마, 카르타고 등 지중해 문화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수크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우뚝 솟은 사각형 기둥의 첨탑을 찾을 수 있다.

 
튀니스는 고대 로마와 지중해 패권을 다투었던 카르타고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카르타고는 BC 9세기 경 페니키아의 왕녀 디도가 건설했던 도시국가다. 유리한 해양입지와 비옥한 땅으로 번성하였으나 BC 146년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해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한겨울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군을 격파한 한니발과 카르타고의 전력에 호되게 당했던 로마는 카르타고의 주민과 도시를 불태운 후, 새 도시를 건설하였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카르타고엔 현재 그 위에 건설되었던 로마유적과 일부 유적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로마를 벌벌 떨게 했던 명장 한니발의 위용은 그 전설과 함께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수도 튀니스에서 20㎞ 정도 북동쪽으로 가면 튀니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시 시디 부 사이드가 있다. 시디 부 사이드는 튀니스만 위 절벽에 높게 자리 잡은 작고 예쁜 하얀 마을이다. 이 마을의 수많은 자랑거리 중 으뜸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지중해와 마주한 절벽과 지중해 해안을 따라 조성된 마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고대 문화 유적은 없지만 이곳을 찾는 유럽 관광객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지중해의 자연과 어우러진 시디 부 사이드의 또 다른 특징은 ‘북아프리카의 산토리니’라고 불릴 만큼 특색 있는 색감인데, 하얀 집과 파란 창문이 이색적인 곳이다. 흰색과 파란색을 대비시켜 마을 전체를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어슴프레 빛나는 흰 벽들에 이 고장의 특징이 된 화려하게 조각된 창문들이 모두 같은 파란 색으로 칠해져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화려한 아치의 통로를 따라가면 마치 작은 그리스의 어느 섬으로 뛰어 들어온 것과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다 자스민 꽃 향기가 진동하는 골목에서 마주치는 백색과 청색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조화가 낮에는 햇살 아래, 밤에는 달빛에 어우러져 너무나도 매력적인 곳이다.

시디 부 사이드를 칭하는 수식어는 무수히 많다. 하늘과 바다, 하얀 집과 대비되는, 튀니지안 블루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예쁜 파란 대문을 일컬어 삼청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프랑스의 문학인 앙드레 말로가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가 되는 곳이라고 칭송한 곳이다. 이런 시디 부 사이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멋진 매력 때문에 오래전부터 수많은 프랑스 문인들과 예술가들을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





 
튀니지에서 한 곳 더 가볼만한 곳은 튀니지 내륙,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210㎞ 떨어진 곳에 있는 엘젬이다. 인구 7000명의 이 작은 도시 중심에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로마가 전 세계에 세운 원형경기장 중에서 로마의 콜로세움, 카푸아 극장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엘젬의 콜로세움은 높이 35m, 둘레길이 427m로 3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4만5000명을 수용하는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조금 작은 규모다.

가운데 경기장을 중심으로 동쪽의 관객석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나 서쪽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17세기 가혹한 세금 징수에 불만을 품을 주민들이 반란을 꾀했고, 이 과정에서 원형경기장을 방어요새로 삼았다 한다. 모하메드 베이의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서쪽 벽에 구멍을 뚫으면서 심하게 손상됐다고 전해진다.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이 원형경기장에서는 지금도 여름이면 유럽의 교향악단이나 음악인들의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