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정직하다

2020-03-04     경남일보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숫자 보는 일이 일상화 됐다. 밤새 몇 명이나 늘었는지 궁금해서다. 숫자 보기가 두렵지만, 그래도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서다. 5000명을 넘어 일각에서 1만 명까지 추산할 정도다. 고대 인도에서 만들어진 이후 숫자가 요즘처럼 공포로 다가온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영국의 비평가 H.G.웰스는 “언젠가는 숫자 이해능력이 읽기 쓰기처럼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금이 바로 그 ‘언젠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닌 듯 하다. 대부분 정보가 숫자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숫자 이해능력을 제대로 갖추기는커녕 숫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데 있다. 그 틈을 정치는 교묘히 파고든다.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국내 첫 환자 발생 이후 확진자, 사망자, 출입국자 수, 마스크 공급량 등 엄중한 각종 통계 수치를 ‘확증편향’적으로 오독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국민을 더욱 분통 터지게 했다. 대통령의 ‘코로나 종식’ 발언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회 발언, 마스크 사태, 청와대 대변인의 중국인 입국 관련 숫자 해석 오류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숫자를 동원하면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것처럼 들린다. 전혀 근거 없는 어림수라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보면 ‘숫자놀음’으로 ‘마녀사냥’이 자행되었고, ‘매카시즘’을 비롯해 정치적 야욕을 챙긴 사례는 부지기수다. 숫자는 관련성, 정확성, 올바른 해석이 생명이다. 숫자는 정직하다. 다만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장난질한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