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그래도 고향 바다에는 봄꽃이 필게다

이덕대 (수필가)

2020-03-10     최창민
 
“언제 한번 안내려와? 내려오게 되면 연락해라. 요즘 멍게가 제철이다. 안주해서 소주 한 잔하면 코로나는 물론이고 스트레스가 확 씻겨나갈 꺼다.” 봄비 속에서 집안 정리를 하다말고 전화 받는 친구 목소리가 우렁우렁하다.

팬데믹(pandemic)재난이 된 중국 발 신종 바이러스가 전반적인 삶의 방식과 일정을 송두리째 바꾸면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일상의 면역기재를 새롭게 만드느라 힘들다. 시간에 지배당해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살았지만 오히려 고립되고 격리된 상황에서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스스로 주관자가 되어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낭비에 관대했던 지금까지 삶이 게으름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사회와 거리두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봄이 가져다주는 나른한 긴장감이라도 잃지 않고자 우산 쓰고 길을 나서니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찬바람이 심하다. 계절은 봄인데 날씨는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것 같이 을씨년스럽다. 화창한 봄이 내주는 자연과 인간의 따뜻한 교감은 사라지고 마스크로 얼굴가린 사람들이 퇴근길 서두름처럼 종종 걸음을 친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든 민초들 삶의 신산(辛酸)함이 서글프다.

전화로 그곳은 괜찮은가 친구안부를 묻지만 실상은 고향 근처에서 동창회마저 못하게 된 허전함을 달램과 동시 남녘 바다가 만들어 내는 봄 냄새를 목소릴 통해서라도 느끼고 싶음이다. 이때쯤 남일대 근처 바다 속에는 한껏 자란 모자반이 삼단 머리채마냥 흔들리고 있을게다. 길게 자란 해초가 잔잔한 파도를 헤적일 쯤엔 덩달아 멍게 꽃도 핀다. 봄 바다 향기를 품은 것 중 멍게만한 것이 또 있을까. 짭조름한 바다 향 자체인 멍게는 초장에 그냥 찍어 먹어도 좋고 살짝 데쳐 갖은 채소와 비빔밥을 해도 맛있다. 상큼한 향기가 마치 이른 봄 참꽃 같이 싱그럽다. 산꽃이 울긋불긋 필 때면 남해바다 속 멍게 꽃도 화려해진다. 멍게는 독특한 향과 상큼하고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어 먹고 난후도 참꽃이나 찔레 새순 같은 맛이 입 안에 감돈다.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멍게를 먹기는 쉽지가 않다. 만만치 않은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바닷가에 앉아 썰어먹던 그 싱싱한 기억을 잃어버릴까해서다. 하루빨리 역병이 수그러들어 봄볕 따스한 갯가에 앉아 고향 친구랑 바다 꽃 멍게 안주에 소주 한잔하는 꿈을 꾼다. 봄비 내리니 부지런한 사람들 평범한 일상이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