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를 삼가 맞이하다

최명숙 (어린이도서연구회회원)

2020-03-12     경남일보

 

전령과 나그네의 수호신인 ‘헤르메스’를 떠올린다. 챙이 넓은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동방의 사자(使者)지팡이를 짚고 마법의 망토를 두른 매력적인 청년의 모습을 한 헤르메스. 정녕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령을 전하고 세상의 모든 나그네를 차별 없이 보호해 기.필.코. 목적지까지 무사히 인도하는 것일까? 혹여라도 대상을 구별하거나 구분짓기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일까?

헤르메스가 신화 속 전령사라면, 영화 ‘1917’에 나오는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현실 속 전령사라고나 할까? 두 병사가 전령병으로 선택받은(?)이유가 놀랍기도 하고 한편 어이없기도 하지만(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읽는다는 이유로, 스코필드는 얼떨결에 블레이크의 간택(?)으로 전령병이 된다), 그들의 면모만큼은 헤르메스 못지않다. ‘헤르메스인듯 헤르메스아닌 헤르메스같은’ 전령사.

1917년,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 곳에는 두 명의 병사가 있었다. 공격중지명령서를 전할 임무를 맡은 전령병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위기에 처한 형을 구해야 하는 블레이크의 간절함(형제애)이, 그리고 마지막까지 전령병의 소임을 다하는 스코필드(전우애)가 있었다. 수호신 헤르메스는 그들의 고된 여정에 기꺼이 동행해 주지 않았을까? 신들의 전령이자 제우스의 사자인 헤르메스는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는데, 짐작컨대 블레이크의 영혼 또한 어김없이 저승으로 안내하였을 것이다.

봄이다. 개불알꽃도 쑥도 천지이다. 봄비가 한차례 지난 뒤 매화공원으로 봄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뜯어온 쑥을 다듬고 씻어 다시물에 된장을 풀고 다진 바지락살과 들깨가루를 넣어 쑥국을 끓였다.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자발적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편되었고 삶의 촉(觸)은 참 많이도 무뎌졌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익숙지 않은 일이다. 몇몇의 봄의 전령사 덕일까? 어딘가에 칩거하고 있던 오감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신통방통하게도~. 입춘대길 부적삼아 봄의 전령사를 삼가 맞이한다. 폭죽처럼 터지는 매화의 아우성과 그 아우라에 놀란 개구리도 땅 위로 튀어 올랐다. 머지않아 동네방네 방방곡곡 눈부신 꽃잔치가 열릴 테다. 소쿠리에 담겨 풀죽었던, 어쩌면 부활은 가망 없어 보이던 시들대로 시들었던 쑥이 물을 만나 생기 있게 되살아나듯, 제 몸 담긴 소쿠리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철철 넘쳐흐르던 그 쑥의 역동성을 닮은 봄이기를 빈다. 2020년 봄의 향연을 기대한다.

최명숙/어린이도서연구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