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26]길

2020-05-03     경남일보
길/김명인



길이 제 길을 접고 한곳에 들기까지는

수많은 네거리를 거쳐 가야 한다

상가와 고층아파트

근린공원과 주택단지로 갈라선 봉송 사거리

길이 길로 가로막히는 것은 언제나

신발대신 날개를 매다는 새 길 탓이지만

멀고 또 가까워 길은 길을 퍼다 버릴 뿐

어떤 바퀴로도 제 길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검은 띠로 영정을 두르고 국화 꽃다발 포개 싣고

멀리 산 쪽을 당겨가고 있는 저 길조차

길을 꺾어 마침내 한 골짜기에 파묻히기까지는

트인 네거리마다 돋아나는 날개 잘라내느라

한참씩 멈칫거리거나 오래 끙끙대야 한다


 



#poem산책… 봄이면 갑자기 길이 많아집니다. 문득 생각난 듯 여러 오솔길이 내려옵니다. 새로 돋은 풀숲으로 없던 길이 생겨 몇몇 짚었던 발자국이 보입니다. 이렇게 또 길은 새로운 길을 만들겠습니다. 많은 잡음을 벗어나 숨을 길을 찾습니다. 그 길을 들어서면 어느 쯤에 마침내 당신 음성 있는 곳이 보일까요. 고개를 넘으니 어떤 바퀴로도 실어 나르지 못할 길이 나옵니다. 돋아나는 날개를 자를까요, 골짜기에 묻힐 생을 앓을까요. 벗어남과 끌어당김의 중첩되는 갈등에서 한참을 멈칫거립니다. 그러다가 걸어왔던 길을 떠올립니다. 버려야 하는 어떤 길들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길 하나를 지웁니다. 그러면서 길을 生으로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