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카네이션

허정란 (수필가)

2020-05-10     경남일보

어버이날이면 꽃을 샀다. 붉은 카네이션은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왼쪽 가슴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고향 마을 면사무소에서는 초등학교 강당을 빌려 어버이날 경로잔치를 열어주곤 했다. 학교 강당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면 막걸리 한 잔으로 얼큰해진 얼굴은 반가움으로 더욱 붉게 물들었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흥이 돋아 어머니는 평소 김매던 밭에서 땀을 훔치며 읊조리던 ‘청산리 벽계수야’를 구수하게 읊었다.

어머니의 빈 집에는 붉은 카네이션이 쓸쓸하게 방안을 지키고 있다. 현관문에서 정면으로 잘 보이는 찬장의 둘째 칸이다. 어머니는 카네이션을 귀하게 여겼다. 어버이날이 지나면 자식들 얼굴을 바라보듯 찬장 속에 두고두고 보았다. 먼지라도 묻을까 봐 투명 케이스에 넣어서 소중하게 간수하였으니, 주인이 떠났어도 묵묵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를 흔들어보고 살며시 쓰다듬어 본다. 어버이날 가슴에 활짝 핀 카네이션 한 송이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당당하고 행복해했던 어머니.

오래전 어버이날, 아이들이 선물한 편지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다. 분홍색 카드는 아이 손바닥만큼 작아 웃음을 머금게 했다. 초록 색종이에 연필로 그린 카네이션 한 송이가 소박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어찌나 간소하던지.

“엄마 아빠, 키워줘서 고맙습니다. 커서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아이들 선물은 게 한 마리가 걸어 나오듯 삐뚤삐뚤한 글씨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의 편지가 신기하게 떠오른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느닷없이 반가움으로 찾아든다. 단순한 아이들의 편지에서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떠 올린다.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 반만이라도 흉내 낼 수 있을까. 어머니는 주야로 자식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아가기를 기도하셨다. 어른이 된 아들딸의 다정한 모습을 대하며 코흘리개 때의 손바닥 편지가 든든하고 소중하다.

아들과 함께 꽃시장에 들른다. 오월 어버이날을 맞아 사방에 카네이션이다. 활짝 핀 꽃을 원 없이 구경하지만 돌아서면 그리운 얼굴이 비친다. 조화가 있는 꽃 가게 앞에서 눈길을 멈춘다. 흰색과 옅은 분홍색 꽃송이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올해는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으로 하얀 카네이션을 고른다. 꽃시장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카네이션 물결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 길 이팝나무 연두색 이파리가 하늘거린다.

허정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