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28]유리상자

2020-05-24     경남일보
유리상자 / 고종목

사각의 유리창 밖에 새 한 마리
유리창 안의 나와 눈 맞춘다
손가락만한 꽁지로
TV 리모컨을 콕콕 찍는다
사각의 화면 가득
거리로 나온 앵무새들
참새 소리 비둘기 소리 까마귀 소리로 수다를 떤다
초록 외선 내선 순환 열차로
지상 지하 강동 강서 강북 강남의
출구를 찾아 돌고 돈다
봄여름 갈겨울을 갈아탄다
버스에서 내려 빌딩 회전문 속을 빙-빙 돈다
700Km 상공에서 인공위성의 눈동자가
새들의 이동을 검색한다
출입문마다 CCTV 감시카메라 녹화 중
탈출구가 막혀 있다
유리에 진열된 서로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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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겹을 통해 서로를 보는 시대, 그것은 소통 부재의 극단이며 현대문명의 단절이다. 이는 곳곳에 장치된 기계적인 타인의 눈을 통해 나타난다.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눈. 파편화된 세상에서 주체의식이 분열될 때 겪는 정체성의 혼란. “거리로 나온 앵무새들/ 참새 소리 비둘기 소리 까마귀 소리로 수다를” 떠는 같은 종의 다른 소리들이 혼재되어 마침내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형국.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거기에는 허무와 허상이 존재하고 결국 회의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탄생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풀어야 할 숙제를 생각해야 한다. 파편은 파편으로 존재하기에 결국 파편을 통해 다른 주체가 되어야 하는 시인의 숙명에 대해 고민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비로소 성찰하는 시인의 자리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