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감꽃

2020-05-27     경남일보
감꽃  /장석남

감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엔
이 세상에 와서 울음 없이 하루를 다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을 수가 없다

감꽃이 저렇게 무명빛인 것을 보면
지나가는 누구나
울음을 청하여올 것만 같다

감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는 마당에
무명 차양을 늘인 셈이다
햇빛은 문밖에서 끝까지
숨죽이다 갈 뿐이다

햇빛이 오고
햇빛이 또 가고
그 오고 가는 여정이
다는 아니어도 감꽃 아래서는
얼핏 보이는 때가 있다
일체가 다 설움을 건너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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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가 이 세상에서 젤 이쁜 줄 알았지. 아비가 이 세상에서 젤 무서운 줄 알았지, 돋보기를 쓴 할배는 이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줄 알았지. 대나무 평상에는 감꽃이 바람에 휘둘러 떨어져 날아왔지. 저 가지 끝 잎사귀에 싸인 조롱조롱 새끼들은 배고프게 매달려 있었지. 배시시 이빨이 우릴 닮았지. 이파리 틈새의 봄 햇살은 더 눈부셨고 누런 보리가 익기를 시작했지. 도회지로 나간 누나는 소식이 없고 봄 햇살의 오라기 마다 설움이 한 가닥씩 걸려있었지. 무명 빛으로 소박한 감꽃은 애써 맑았지.(주강홍 진주예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