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역사건물 속살 드러냈다

중영(中營)터 발굴조사 조선 관아 확인 병무 중심지 구체적 실증자료 등 확보 조 시장 “복원사업으로 역사문화 재정립”

2020-06-03     최창민

조선시대 때 진주성 내에 축조한 중영(中營)건물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주시는 경남연구원에 의뢰해 진행한 진주성 중영 터 학술발굴조사에서 중영의 건물 일부를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시는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진주성 내 주요 건물인 중영의 복원을 목적으로 중영과 부속 건물의 위치와 구조를 밝히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중영은 경상우병영의 참모장인 우후(虞候·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 관직)의 근무 공간이다. 우후는 진주성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종2품의 최고위 무반 관직)다음으로 막중한 임무를 지닌 고위직 관리이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진주성도에 의하면, 중영은 영남포정사문루와 공북문 사이에 망일헌(望日軒), 장청(將廳), 삼문(三門), 배리청(陪吏廳), 진무청(鎭撫廳) 등의 부속 건물과 함께 조성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조선후기 진주성도에 표현된 벼랑 지형과 진무청(병영에 소속된 서리의 집무실)으로 보이는 관아 건물 1동이 확인됐다. 이는 진주성 중영과 부속 건물 복원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이 일어났던 곳으로 특히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민관군 7만 명이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3년에는 경상우병영이 진주성에 설치됨에 따라, 진주성은 경상우도(慶尙右道)의 병무 중심지이자 영남 서부의 중점 방어기지로서 높은 위상을 지닌 곳이다. 진주성은 현재 사적 제118호로 지정돼 지속적인 보존과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이번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진주성 내 중영과 부속 건물을 복원해 일제강점기 이후 무분별하게 훼손된 진주성의 제 모습을 찾고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주시는 중영 복원을 계기로 진주성 내 주요 건물의 복원을 순차적으로 추진해 역사문화 도시 진주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충실히 할 계획이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