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융희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아버님 전 상서

2020-06-11     경남일보
 

오늘은 날이 맑습니다.
파도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그저 살만 합니다.
갈 수 없는 그 먼 곳은 얼마나 깊습니까?
그곳이 오늘은 희미하게 보일 듯도 합니다.

-심재휘
 


여기와 저기, 차마 갈 수 없는 멀고 깊은 곳으로 영혼의 편지를 올려 드리는 시인의 어제가 궁금해진다. 하여 아득히 펼쳐진 모래사장에 온몸으로 엎드린 생명체의 기척에 바짝 귀를 대어 본다. 무시로 폭풍우와 싸우고 때론 거센 파도 맞닥뜨렸던 어제의 고단함이 곧 우리의 인생임을, 살다 보니 오늘 같은 맑은 날도 있어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는 것을. 나와는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당신이 계신 곳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먼바다로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에서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숨길 수 없는 노래를 부르듯 올려드리는 한 통 편지에서 그 아버지가 내 뿜었던 신음도 희미하게나마 들리는 듯하다. 순간 포착한 영상과 그 날시에 시적언어가 결합하여 애절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디카시라 하겠다./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